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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칼럼] 출판은 돈이 모두가 아니다
부산일보 / 2013-07-23
지난해 12월, 문화체육관광부 앞에서 도서정가제 개정을 요구하는 1인 시위를 한 적이 있다. 나날이 어려워져만 가는출판 현실에 대하여 한국출판인회의 등 출판계 사람들이 돌아가면서 목소리를 내는 릴레이 시위였다. 영하 15도의 맹추위에 발이 꽁꽁 얼었지만 개인적으로 출판 현안을 더 고민하게 되는 작은 계기가 되었다.
도서정가제, 책 사재기, 그리고 하루키
당시 출판계 요구를 반영하여 올 1월에 민주통합당 최재천 의원이 도서정가제를 강화하는 출판문화산업진흥법 개정안을 국회에 발의했다. 4월에는 국회에서 도서정가제 법제화를 위한 공청회가 열렸지만, 7월 현재 법안 심사를 포함한 후속 일정은 불투명한 상태다. 만약 9월 정기국회에서 이 법안이 입법화에 실패한다면, 출판시장 경색과 유통질서 혼란은 더욱 가속이 될 게 뻔하다.
지난 5월, 한 방송사는 명백한 불법행위인 책 사재기의 실태를 파헤친 바 있다. 방송을 통해 몇몇 출판사 실명이 거론되었고 논란의 중심에 선 황석영 작가는 해당 책에 대하여 절판을 선언하면서 명예훼손소송까지 불사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황석영 작가의 기자회견으로 언론의 관심은 책을 쓰고 팔고 구입하는 모든 주체를 도마 위에 올려놓았다. 그러나 정작 사재기의 주체가 다시는 사재기의 유혹에 흔들리지 않을 만큼의 큰 처벌을 받았다는 소식은 들리지 않는다.
지난 7월 1일, 무라카미 하루키의 신작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가 출시되자마자 수많은 팬들이 책을 구입하기 위해 서점 앞에 줄을 서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유독 우리나라 독자들에게 강한 무라카미 하루키의 인기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출간과 동시에 베스트셀러를 기록한 이 책의 선인세는 천정부지로 올라 있었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약 16억 원 이상이라고 하니, 그의 엄청난 이름값을 짐작할 수 있다.
또한 2008년 한·미 FTA, 2011년 한·EU FTA 발효에 맞춰 개정된 저작권법 중 저작권 보호기간 연장 조항이 2013년 7월 1일부터 시행되었다. 국내외 저작자의 저작권 보호기간이 사후 50년에서 70년으로 크게 늘어났다. 한·미 FTA에 따라 향후 20년간 출판물과 관련해 추가 지불해야 하는 저작권료는 연평균 31억 6천만 원, 한·EU FTA에 따른 추가 저작권료는 21억 3천만 원이다. 둘을 합하면 연평균 52억 9천만 원, 20년간 총 1천58억 원에 이르는 어마어마한 규모다. FTA 수혜품목인 자동차, 전기전자와 달리 출판은 피해업종이다. 그런데 정부는 2017년까지 농어업을 위해 24조 원의 재정지원 계획을 수립하였지만 출판 산업에 대한 지원 대책을 제시하지 않고 있다.
이상으로 사재기 처벌이 불가능한 구조, 사상 최고액에 이른 외국 작가의 선인세 갱신, 그리고 FTA 실행에 따라 위기에 처한 출판 산업의 모습을 대략적이나마 그려 보았다. 좋은 책을 출판하는 출판사와 좋은 책을 읽는 선순환 구조가 붕괴되고 있는 한국 출판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 주고 있는 것이다.
좋은 책, 좋은 출판은 보호되어야
다니엘 페나크의 '소설처럼'을 여덟 살 막내아들한테 소리 내 읽어주면서 행복한 책읽기란 과연 무엇일까를 생각해 본다. 아마도 가장 적극적인 독서 행위는 무언가에 맞서는 책 읽기일 것이다. 모든 독서는 저마다 무언가에 대한 저항 행위이다. 우리가 처한 사회적, 경제적, 사상적, 문화적 상황에 맞서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무엇보다도 죽음에 맞서 책을 읽는다. 카프카는 아버지의 바람을 거역하면서 책을 읽었고 신문 기자였던 카우프만은 베이루트 감옥에 갇혀 '전쟁과 평화'를 책장이 닳도록 읽고 또 읽었다.
책 읽기는 아무런 대가도 바라지 않는 무상의 행위다. 인류의 진보와 발전은 고난의 역사임을 다양한 책을 통해 경험할 수 있다. 책을 읽는 행위는 개인의 내밀한 경험이면서 또한 공동체와 연대하는 행위이다. 만약 우리 사회가 돈이 되는 출판에만 매달린다면, 출판은 공공성을 잃고 출판생태계의 종 다양성은 사라져 버리지 않겠는가. 또한 삶의 공간에서 다양한 책 읽기가 사라진다면 우리의 공동체는 삼풍백화점처럼 급속한 붕괴에 직면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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