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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행본 출판, 두툼한 ‘벽돌책’ 대신 얇고 알기 쉽게

독자의 독서습관 변화와 출판사 이해관계 맞물려

소설도 장편보다 경장편... 인문서적은 세분화 출간

경향신문 / 2013-07-31


단행본이 얇아지고 있다. 기존 장편소설이나 인문서는 300~400쪽에 이르렀으나, 이제는 100~200쪽 분량의 책들이 잇달아 나오는 추세다. 긴 글을 싫어하는 독자들의 호흡에 맞춘 결과다.


최근 출간된 소설가 김영하씨의 <살인자의 기억법>(문학동네)과 배명훈씨의 <청혼>(문예중앙)은 각각 176쪽, 260쪽이다.


이 소설들은 중편(300~400장)보다는 길고 장편(800장 이상)에 비해서는 짧은 원고지 400~500장 분량의 ‘경장편’이다. 민음사는 최근 조해진씨의 <아무도 보지 못한 숲>을 시작으로 경장편 시리즈 ‘오늘의 젊은 작가’를 출범시켰다. 총 10편이 나올 ‘오늘의 젊은 작가’ 시리즈는 2편을 제외하면 이미 개별적으로 출간됐던 작품이지만, 경장편이라는 점을 부각해 하나의 시리즈로 통합했다.



최근 경장편을 펴낸 소설가 김영하, 배명훈씨와 인문서 경량화 바람을 이끈 <분노하라>의 저자 스테판 에셀(왼쪽 사진부터)


지난해 3월 출간된 현병철 독일 카를스루에대 교수의 <피로사회>(문학과지성사)는 128쪽이다. 만만치 않은 철학 지식이 필요하면서도 짧은 분량으로 대중에 소구했던 이 책은 인문서로는 이례적으로 6만부가 팔리는 성과를 거뒀다.


문학과지성사는 미셸 푸코의 <헤테로토피아>, 질 들뢰즈의 <소진된 인간>, 전상진 서강대 교수의 <음모론의 시대> 등 <피로사회>와 비슷한 분량의 인문서를 ‘틈 시리즈’(가칭)로 묶어 펴낼 예정이다.


다른 출판사들에서도 이러한 경량 인문서가 줄지어 나온다. 알마는 협동조합, 경제민주화 등 최신 시사 이슈에 대해 알기 쉽게 설명해주는 100쪽 분량의 ‘이슈북’ 시리즈를 내고 있다.


이 출판사의 ‘과학과 사회’ 시리즈 역시 최신 과학정보를 인문학의 시선으로 정리해 보여준다. 글항아리의 ‘아케이드 프로젝트’는 분량이 짧아 단행본으로 나오기 어려웠던 학술논문을 대중에게 소개하며, 이매진의 ‘시시각각 시리즈’는 녹색당, 일본 공산당 등 진보의 가치를 대변하는 다양한 목소리를 ‘월간지 별책부록’ 느낌으로 낸다.


이 같은 움직임은 출판사의 이해관계와 독자의 취향 변화가 맞물려 빚어낸 결과다. 단편이나 중편은 분량이 적어 단행본으로 출간하기 쉽지 않지만, 경장편은 판형을 조절하면 단행본으로서도 손색이 없다. 출판사 입장에서는 경쟁력 있는 작가의 원고를 비교적 빠른 시간에 내놓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인문서도 마찬가지다.


강성민 글항아리 대표는 “속보성 있는 미디어는 깊이가 없고, 깊이 있는 지식이 담긴 단행본은 묶여 나오기까지 2~3년이 걸린다”며 “세분화된 주제, 사회현상에 맞춘 경량 인문서들이 이 틈새를 노리는 것”이라고 말했다.


스마트폰 시대의 독자 역시 경장편, 경량 인문서를 반긴다. 정혜인 알마 대표는 ‘이슈북’ ‘과학과 사회’ 시리즈에 대해 “시간을 30분 단위로 쪼개 책을 읽을 수밖에 없는 청소년층, 긴 호흡의 글을 읽는 데 익숙지 않은 독자층을 확보하려는 목적”이라며 “두꺼운 인문서로 가는 징검다리 역할을 기대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명원 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 교수는 “독자들이 긴 소설을 읽기 힘들어하고, 책 읽는 인내력이 떨어지는 추세”라며 “앞으로 긴 호흡의 작품이 나오기 힘들 것 같다”고 말했다.


경장편 소설, 경량 인문서의 전망과 효과에 대해서는 엇갈린 전망이 나온다. 김미현 이화여대 교수는 “경장편은 단편의 미학과 장편의 스토리텔링을 두루 갖춘 분량”이라며 “장편을 중시하는 세계문학의 요구와 국내 문학시장 상황이 경장편 붐의 배경”이라고 말했다.


배명훈씨는 “2~3권으로 나오는 장편은 이제 거의 사라졌고, 1권 분량의 장편도 요즘 독자들이 소화하기에 어려워하는 걸 느낀다”며 “경장편은 출판업계, 독자들이 소화하기 좋은 분량”이라고 밝혔다.


시장의 반응이나 수익성은 앞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다. <피로사회>의 성공은 예외적인 경우일 뿐, 대부분의 경량 인문서는 아직 독서시장에 안착하지 못한 상태다.


강성민 대표는 “경영적 입장에서 보면 ‘벽돌책’(벽돌같이 두꺼운 무게의 책)은 초판 1000부만 소화해도 손해를 보지 않지만, 경량 인문서는 3000부 이상은 나가야 이익이 남는다”며 “아직은 시장에서 경량 인문서의 전망이 불투명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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